투기는 남의 기회 빼앗아 부당이익 챙기는 도박? 가격 급등락 완화시켜 시장안정 돕는 경제행위

입력 2015-11-20 18:32  

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38> 투기자의 역할과 부정적 시선

투기자≠도박꾼
투기는 재화의 가격 변동 예측하고 손실위험 떠안아 이익 얻는 행위
존재않는 위험에 베팅하는 도박과 달라

투기자=시장 안정자
수요와 공급의 변동 추이에 민감…경제에 내재된 위험에 적극적 대처
보이지 않게 소비자에게 도움 줘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




많은 경우 사람들은 투기자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금융위기가 발생하거나 어떤 특정 재화 가격이 폭등할 때마다 ‘투기꾼’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투기꾼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재화 가격이 폭등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정치권에서는 정책의 실패나 정치 개입 결과를 투기꾼 탓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투기꾼으로 인해 다른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기 때문에 투기꾼을 철저히 조사해 단호히 응징해야 한다고까지 단정한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투기자에 대한 이해 부족의 소치다. 사실 투기자는 경제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한다. 투기는 시장가격 차이를 이용해 이윤을 얻으려는 행위다. 투기로 이윤을 얻는 것은 미래의 시장가격 변화에 대한 예측에 달려 있다. 시장가격을 잘 예측하면 이윤을 얻고 그렇지 못하면 손실을 본다. 위험이 제로(0)인 완벽하게 안전한 투자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소금 가격 변화를 이용해 이윤을 얻으려는 전문 투기자를 보자. 그는 기후조건이나 시장상황 변화 등에 대해 다른 어느 소비자보다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일반 소비자의 생활에서 소금은 아주 사소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생활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소금 가격이 1㎏당 500원일 때 투기자가 미래에 소금 공급 부족이 있으리라고 판단한다면 그는 소금을 사기 시작할 것이다. 그의 투기적 수요로 인해 소금가격이 상승한다. 예를 들어 1000원으로 오른다고 하자.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투기자가 예상한 대로 실제로 소금 공급이 감소한 때 더 높은 가격, 예를 들어 2000원에 사뒀던 소금을 내다 팔아 막대한 이윤을 얻는다.

이것이 투기자가 비난받는 이유다. 쌀 때 사서 비싸게 팔아 이윤을 많이 챙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투기자가 이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예측대로 시장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만약 예측이 빗나갔다면 그는 커다란 손실을 보는 것은 물론이다. 이 경우도 투기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준다.

만약 이런 투기자가 없다면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공급 감소로 소금 가격은 2000원보다 더 높은 가격(예를 들어 3000원)으로 상승했을 것이다. 이것은 소비자에게 더 좋지 않은 상황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투기자가 사뒀던 소금을 시장에 내다 판매함으로써 3000坪?될 소금 가격이 2000원이 된다. 투기자는 소비자가 미래의 높은 가치를 모르고 있을 때 사 뒀던 소금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공급 감소를 완화해 보이지 않게 소비자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투기자는 미래의 재화 부족을 예견하는 선각자다. 앞으로 닥칠 재화의 부족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때 미래를 위해 많은 양을 확보해 저장하고, 재화 부족이 확실해질 때 비축해 놓았던 재화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공급 부족을 줄여준다. 그리해 수요와 공급 간의 격차를 줄이고 가격의 극단적인 등락을 완화시킨다. 다시 말하면 극단적으로 낮아질 가격을 올려주기도 하고, 높아질 가격을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투기자는 이런 역할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투기자는 다른 사람의 위험을 떠맡는 일도 한다. 마늘 농사를 짓는 농부를 생각해보자. 농부는 9월에 파종을 한다. 파종 시 마늘 가격이 한 접에 5만원이었지만, 수확할 시점인 이듬해 6월 중에는 시장 상황에 따라 변할 것이다. 수확기에 인도할 수 있는 마늘에 대해 한 접에 6만원에 한 투기자와 계약을 했다고 하자. 그런데 수확기인 이듬해 마늘가격이 8만원이 됐다면 그 투기자는 막대한 이윤을 얻는다. 이 경우 농부에게 돌아갈 이윤을 투기자가 가로챘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만약 마늘 가격이 3만원이 됐다면 어떻게 될까. 커다란 손해를 보는 쪽은 투기자이고 이익을 보는 쪽은 농부다. 이 투기자와의 거래로 인해 농부는 커다란 손실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투기자의 개입 덕분에 생긴 농부의 이익, 혹은 투기자의 손실에 대해 일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대개 투기자의 손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투기자와의 계약으로 인해 농부가 져야 할 가격 변동 위험을 투기자가 지게 된다. 농부는 미래 가격에 노심초사할 필요 없이 편안한 잠을 자며 농사에 전념할 수 있다. 미래 가격 변화 부담을 투기자가 지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투기자는 다른 사람 위험을 부담하는 보험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 농부는 마늘 농사에, 투기자는 위험 부담에 각각 특화해 농부와 투기자 간 분업하며 서로 협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해 행동하는 투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투기를 도박과 같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투기는 도박과는 전혀 다르다. 도박은 존재하지 않는 위험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게임인 반면, 투기는 경제에 내재된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그런 까닭에 투기자를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돈을 버는 철면피 같은 사람, 혹은 행운이나 도박 또는 내부농간에 의해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어느 직업에서나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는 사람이 있듯이 나쁜 투기자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일반 투기자는 일반 경제주체처럼 자신의 이윤을 얻기 위해 행동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경제에서 가격변화 폭을 줄이고, 다른 사람 위험을 떠맡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스 국채가격 폭락
투매 탓 비난받은 투기자 ‘디폴트 경보기’였을 뿐

투기가 발생하는 것은 인간세계에 내재된 불확실성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불확실한 세계에 사는 인간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투기행위라 할 수 있다.

기업의 새로운 투자, 영화 제작, 탤런트와 가수의 노력, 미술가의 작품, 작가의 저작 등 모두 투기 행위다. 심지어 학생 전공에 대한 선택과 직업 선택 또한 투기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선택하고 만든 것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 그들은 많은 소득을 얻는다. 그러나 인기를 얻지 못하면 완전히 손해를 보고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다.

자본시장에서 투기자가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미래의 사건에 대해 잘 예측해야 한다. 잘못 예측하면 커다란 손해를 입는다. 예를 들어 아무런 유동성이나 지급불능 문제를 갖고 있지 않는 국가가 디폴트(채무불이행)할 것이라고 믿어 그 국가 채권을 투매한다면 투기자는 커다란 손해를 본다. 이런 이윤동기 때문에 투기자는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획득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획득된 정보로 형성된 미래에 대한 예측에 근거해 투기자는 구매와 판매 의사를 표시하고 거래한다. 투기자의 구매와 판매에 대한 의사표시로 인해 자본시장에서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고 거래가 활성화된다. 요컨대 투기자는 자본시장에서 정보를 생산하고 생산된 정보를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최근 그리스의 재정위기로 인해 국채 가격이 폭락했을 때 많은 정치인은 투기꾼을 비난했다. 그러나 그리스 국채 가격이 폭락한 원인은 재정정책 때문이지 투기자 때문은 아니다. 국채 가격의 폭락은 그 나라 정치인이 수년에 걸쳐 만들어낸 방만한 재정지출이 반영된 것이다. 투기자는 그 나라 정부가 파놓은 커다란 구멍을 발견하고 그 나라 국채를 투매하면서 그 발견된 지식을 다른 시장 참가자에게 전달했다. 투기자는 화재를 경고하는 연기감지기와 같다. 그리스의 뮨?가격이 폭락한 것을 투기자 탓으로 돌리는 것은 화재 원인을 화재경보기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



[인터뷰] 가치투자의 달인, "휘열" 초보개미 탈출비법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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